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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의 또 다른 자아 ‘블랙 배지’ 탄생 10주년 맞아

[고카넷, 글=남태화 기자] 롤스로이스의 또 다른 강렬한 자아 ‘블랙 배지’의 탄생 10주년을 맞이했다.

롤스로이스는 설립 초기부터 우아함과 장인정신, 탁월한 엔지니어링 역량뿐 아니라 개성과 반항 정신, 관습에 도전하는 태도 또한 브랜드에 뿌리 깊게 자리해왔다.

이러한 정신은 브랜드 창립자들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던 헨리 로이스(Sir Henry Royce)와 찰스 스튜어트 롤스(Charles Stewart Rolls)는 각자의 환경적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더 높은 기준과 완벽함을 추구했다.

헨리 로이스는 빈곤과 질병, 정규 교육의 부재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그는 언론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극찬을 받은 롤스로이스 40/50 H.P., 일명 ‘실버 고스트(Silver Ghost)’를 제작했으며, 이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반면, 귀족 가문 출신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찰스 스튜어트 롤스는 특권적 삶을 누리는 대신 초기 모터 레이싱과 항공 분야에 뛰어들어 두 영역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두 사람은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선택한 진정한 혁신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였다.

이와 같은 자기표현과 창조적 도전 정신은 이후 롤스로이스 역사 전반에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신이 가장 현대적이고 강렬하게 투영된 결과물이 바로 브랜드의 또 다른 자아 ‘블랙 배지(Black Badge)’다.

롤스로이스모터카 CEO 크리스 브라운리지(Chris Brownridge)는 “블랙 배지는 자신의 성공을 주저 없이, 자신 있게 드러내는 새로운 세대 고객을 위해 탄생했다”며, “롤스로이스는 브랜드를 정의하는 세심함과 정밀함으로, 이전에는 롤스로이스를 고려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객층까지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블랙 배지 도입 이후 10년간 이어진 지속적인 성장은 이러한 전략의 성과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블랙 배지는 미학과 경험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럭셔리 부문 전반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며, “앞으로도 블랙 배지의 또 다른 진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선례, 1928년 롤스로이스 20 H.P. 브루스터 브로엄]

1928년, 롤스로이스 20 H.P. 브루스터 브로엄(20 H.P. Brewster Brougham) 모델 한 대가 기존의 밝은 금속 대신 검은색으로 마감된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착한 채 인도되었다.

당시 광택 크롬이 현대성과 위신을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처리 방식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차량의 고객은 보다 어둡고 더욱 단호한 표현을 선택함으로써 훗날 블랙 배지를 정의하게 될 고유의 코드를 거의 한 세기 앞서 구현했다.

이 차량은 롤스로이스 오브 아메리카의 창립에 참여한 J. E. 알드레드의 의뢰로 제작됐다.

1920년대 후반 뉴욕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이 차량에는 대담하고 진보적인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표현하던 새로운 국제주의 세대의 취향이 반영됐다.

또한, 어둡게 마감된 환희의 여신상과 라디에이터 그릴을 선택한 그의 결정은 자신감 있는 도시적 미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으며, 이러한 감각은 오늘날 블랙 배지 맞춤 제작에도 이어지고 있다.

[최초의 진정한 표현, 1964년 롤스로이스 팬텀 V]

이전 모델들이 블랙 배지 특유의 어두운 미학을 예견했다면, 블랙 배지의 정신은 한 대의 특별한 자동차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64년, 비틀즈는 앨범 <A Hard Day’s Night>를 발표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그해 12월, 존 레논은 새로운 롤스로이스 팬텀 V를 주문했다. 그는 차체 외관과 실내는 물론, 일반적으로 크롬이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되는 모든 장식 요소까지 검은색으로 마감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치빌더였던 멀리너 파크 워드가 제작한 그의 팬텀 V는 범퍼와 휠 디스크까지 깊은 광택의 블랙으로 마감됐으며, 판테온 그릴과 환희의 여신상은 크롬으로 남겨졌다.

이 차량의 뒷좌석 도어와 측면 보조 창, 후면 유리, 파티션에는 트리플렉스사의 어둡게 처리된 반사형 딥라이트 유리가 적용되었다.

존 레논은 1965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그 이유에 대해 “늦게 귀가할 때를 위한 것”이라며, “낮에 탑승해도 차 안은 여전히 어둡고, 창문을 모두 닫으면 클럽 안에 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실내 역시 뒷좌석에는 검정색 베드퍼드 코드 직물과 나일론 러그가, 앞좌석에는 검정 가죽이 적용됐다.

라디오용 안테나와 텔레비전, 검은색 맞춤형 여행 가방 7개가 포함됐으며, 레코드 플레이어와 냉장고, 전화기, 심지어 접이식 침대가 탑재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타협 없는 전복적 의도와 강한 개성으로 완성된 이 팬텀 V는 오늘날 블랙 배지의 정신적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강력한 또 다른 자아]

이 미학이 럭셔리 영역에서 반항의 상징으로 다시 부상하기까지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과 기술 혁신이 필요했다.

2010년대 초,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산업 지형을 재편한 젊은 기업가 세대가 롤스로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고, 정교한 장인정신과 타협 없는 경험을 요구하는 동시에 보다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원했다.

그들의 취향은 더 어둡고, 더 단호하며, 더 대담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새로운 럭셔리 코드로 구체화됐다. 그들은 롤스로이스에 자신들의 세계를 반영할 보다 파격적인 연출을 요청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블랙 배지다. 블랙 배지 모델은 선명한 색채와 기술적 소재를 도입하고, 직접 운전을 즐기는 고객들을 위해 보다 강력하고 민첩한 주행 성능과 풍부한 배기음을 갖추었다.

또한,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그릴, 더블 R 배지를 블랙으로 마감해 기존 상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블랙 배지만을 위한 고유한 문양으로 수학적 기호 ‘∞(무한대)’를 채택했다. 이는 블랙 배지 전용 V12 엔진의 상징적인 출력과 함께, 1930년대 블루버드 K3로 시속 130마일 기록을 세운 말콤 캠벨 경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다.

[엔지니어링으로 빚은 어둠]

롤스로이스모터카 디자이너들은 브랜드의 새롭고 대담한 표현을 상징할 마감 방식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깊은 수준의 블랙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정전 도장 방식을 통해 약 45kg의 페인트를 차체에 미세 분사한 뒤 오븐 건조를 진행했다. 이후 두 겹의 클리어 코트를 입히고, 네 명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연마해 롤스로이스 특유의 피아노 같은 고광택 마감을 완성했다.

3 ~ 5시간이 소요되는 이 공정은 대량 생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이처럼 깊이 있는 블랙은 외관에 적용되는 수작업 코치라인과 더욱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강렬한 외관에 걸맞게 디자이너, 엔지니어, 장인들로 구성된 비스포크 컬렉티브는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그릴’ 등 브랜드의 상징적 요소들을 검게 마감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기존 크롬 도금 과정에 특수 크롬 전해질을 추가해 스테인리스 스틸 기재 위에 침착시키는 방식으로 어두운 마감을 완성했다.

도금 두께는 약 1마이크로미터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각 부품은 자체에 장착되기 전 거울 같은 블랙 크롬 광택을 위해 정밀한 수작업 연마를 거친다.

블랙 배지 전용 휠은 차량의 존재감과 비율을 강조하며 더욱 강렬한 주행 성능을 암시한다. 롤스로이스는 엔진 튜닝을 통해 블랙 배지의 출력과 토크를 향상시켰으며,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변속기와 스로틀 응답성도 새롭게 조정했다.

또한, 섀시 지상고를 낮추고 강성을 보강하는 한편, 블랙 배지 특유의 배기 시스템을 장착해 역동성을 완성했다.

모든 롤스로이스 차량에는 기어 셀렉터에 ‘Low’ 버튼이 적용돼 필요 시 낮은 기어를 유지할 수 있는데, 블랙 배지 모델에서는 이 버튼을 누르면 추가 출력을 사용해 더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실내에는 블랙 배지의 강화된 역동성을 반영하기 위해 항공우주 분야에서 영감을 받은 혁신적인 소재들이 적용됐다.

롤스로이스의 장인들은 탄소 섬유의 정교한 직조 패턴을 기능적 목적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미학으로 재해석했다.

이를 위해 직경 0.014mm의 미세한 알루미늄 실을 교차 배치하고, 여섯 겹의 래커를 도포한 뒤 72시간 경화 과정을 거쳤다. 이후 수작업 연마를 통해 깊이 있는 광택을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에어벤트와 비스포크 오디오 스피커 그릴 등 실내 금속 장식 일부도 블랙 배지의 미학에 맞춰 어둡게 처리됐으며, 물리적 기상 증착(Physical Vapour Deposition, PVD) 공정을 적용해 반복 사용이나 시간의 경과에도 변색이나 변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롤스로이스는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블랙 배지 레이스(Wraith)와 블랙 배지 고스트(Ghost)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같은 해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저스틴 로우가 주행한 블랙 배지 레이스가 상위 5위권 기록을 세우며 그 성능을 입증했다. 이후 2017년 던(Dawn), 2019년 컬리넌(Cullinan)이 차례로 블랙 배지 라인업에 합류했다.

고객들은 4만4000가지 이상의 색상 팔레트는 물론, 자신만의 비스포크 색상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왔다.

예를 들어 호주 청개구리를 연상시키는 라임 그린, ‘오히아 레후아’ 꽃에서 영감을 받은 선명한 레드, 이국적인 나비 레투스 페리안더에서 착안한 깊고 오묘한 퍼플 등이 대표적이다.

블랙 배지 스펙터는 2025년 공식 공개에 앞서 일부 고객에게 기밀 유지를 조건으로 먼저 인도되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첫 선을 보였다. 이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롤스로이스에 대한 확신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블랙 배지는 비디오 게임, 패션, 그래피티 아트, 랜드 스피드 기록, 디지털 경제 등 전통적 럭셔리 범주를 넘어선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비스포크 맞춤 제작 모델을 선보여왔다.

대표 사례로는 블랙 배지 아다마스(2018), 블랙 배지 네온 나이츠 트릴로지(2020), 블랙 배지 랜드스피드 컬렉션(2021), 블랙 배지 레이스 블랙 애로우(2023), 블랙 배지 컬리넌 블루 섀도우 프라이빗 컬렉션(2023), 블랙 배지 고스트 이클립시스 프라이빗 컬렉션(2023), 블랙 배지 고스트 게이머(2025) 등이 있다.

블랙 배지가 두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그 영향력은 슈퍼 럭셔리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블랙 배지를 더욱 대담하게 해석하려는 수요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모터카는 앞으로도 더욱 강화된 블랙 배지 포트폴리오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럭셔리를 정의하는 고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롤스로이스모터카

남태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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